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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⑦
작성자 플라스틱코리아
글정보
Date : 2021/09/06 12:52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⑦

셀룰로오스를 기반으로 한 화학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셀로판 발견으로 이어졌을까? 셀로판은 20세기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투명하고 가볍고 질긴 셀로판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포장재인 젤라틴과 주석 호일보다 훨씬 뛰어났다.

 

셀룰로오스 기반 화학은 폴리머산업 탄생의 주요 기반이 됐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니트로셀룰로오스를 기반으로 한 초기 화합물은 인화성이 매우 높고 심지어 폭발성마저 있어 활용에 제한이 있었다. 화학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하면서, 이 화학적 원리의 활용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형태가 확장됐다. 20세기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물질 중 하나가 셀로판이다.

셀로판 물질에 대한 영감은 스위스의 화학자 Jacques Brandenberger(자끄 브란덴버거)에게서 나왔다. 1900년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Brandenberger는 실수로 흘린 적포도주가 하얀 식탁보에 얼룩지는 것을 보고 보호 코팅 개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온 물질은 셀룰로오스 화학원리를 기반으로, 1892년 Charles Cross(찰스 크로스)와 Edward Bevan(에드워드 베반)이 나무의 셀룰로오스를 가성소다와 이황화탄소를 반응시켜 비스코스로 알려진 황금빛의 점성 액체를 만들어내면서 이루어진 원리를 이용했다.

초기에는 머리빗과 손잡이 등 셀룰로이드로 만든 물건들과 유사한 것들이 이를 이용해 생산되지만, Cross와 Bevan은 직물산업에 유용한 섬유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초기 실험에서는 천연 섬유를 대체하기엔 너무 취성이 강한 섬유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련의 운 좋은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서 물질의 점도가 증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는 숙성 과정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 결과 방적하기 쉽고 나중에 레이온(rayon)으로 알려지는 훨씬 더 강하고 연성이 높은 제품을 얻게 됐다. 그러나 셀룰로오스 크산테이트(cellulose xanthate)로 알려진 이 형태의 레이온은 본 연재 3부에서 언급했던 ‘시어머니용 실크(mother-in-low silk)’를 만드는 데 사용된 질산 셀룰로오스보다 인화성이 훨씬 낮았다.

Brandenberger가 면 원단을 얼룩이 지지 않도록 코팅할 재료로 선택한 물질은 비스코스였다. 그 역시 이 물질이 지닌 매우 뻣뻣하고 부서지기 쉬운 구조 문제에 직면했다. 몇 년 동안, 그는 셀룰로오스 크산테이트로 얇은 필름을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물이 그가 셀로판이라고 부른 물질이다.

1913년 Brandenberger는 필름을 만드는 것이 섬유 코팅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업 기회라고 판단하고, 원하는 두께로 긴 투명 필름을 제작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

셀로판은 20세기 엄청난 영향을 미친 물질 중 하나

 

영화 상영에 사용되는 셀룰로이드 필름의 인화성 문제를 잘 알고 있던 Brandenberger는 처음에는 이 시장에서 셀룰로이드를 셀로판으로 대체할 방도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곧 셀로판이 높은 온도에서 심하게 변형이 일어나고, 필름에 정밀하게 톱니(sprocket) 구멍을 뚫기에는 너무 질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셀로판은 이상적인 포장재로 판명됐다. 투명하고 가볍고 질긴 이 제품은 그 당시 널리 사용하던 포장재 젤라틴과 주석박(은박지)보다 월등했다. 셀로판 포장재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제품은 향수, 비누, 치약 등 이었다. Brandenberger의 목표는 식품산업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당시 대량 살상을 위한 새로운 무기였던 독가스가 통과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이유로 생산량의 대부분이 방독면을 만드는 데 쓰였다. 또한 상처를 위한 외과용 투명 드레싱으로도 사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비자 시장 쪽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재개됐다. Whitman’s 초콜릿은 1912년 이미 일부 초콜릿 제품 포장재로 셀로판을 채택했지만, 1920년대 초 들어 제과 제품 및 담배 같은 제품으로 사용이 확대되면서 셀로판이 독가스에 대해서는 차단성능이 뛰어나지만 수분 차단능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 사이에 Brandenberger가 차린 프랑스 회사가 DuPont(듀폰)에 셀로판 권리를 판매했던 터라, 이 습기 차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한 쪽도 DuPont 소속 화학자였다.

미국 DuPont의 화학자 William Hale Charch(윌리엄 헤일 샤치)는 아이러니하게도 니트로 셀룰로오스 기반 코팅을 만들었다. 그리고 코팅 특성을 맞춤화하기 위해 가소화제 그리고 수분 차단에 기여하는 왁스도 넣었다. 1927년에 완료된 이 개발은 3년이 걸렸고, 이후 DuPont사에서 나오게 되는 화학적 혁신의 긴 역사에서 출발점이 됐다. 일단 수분 차단 문제가 해결되자 셀로판 사용이 급증하면서 DuPont의 가장 성공적이고 잘 알려진 제품 중 하나가 됐다.

같은 기간 동안 화학적으로 변형된 셀룰로오스의 또 다른 형태로 초기 열가소성플라스틱 중 하나가 개발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cellulose acetate)는 1865년 프랑스 화학자 Paul Schutzenberger(폴 쉬첸베르거)가 셀룰로오스를 무수초산을 사용해 반응시키는 방법으로 처음 합성했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는 기본적으로 열가소성플라스틱이지만 분해 온도가 연화점보다 낮기 때문에 용융 가공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1903년 독일의 화학자 Arthur Eichengrun(아르투르 아이헨그륀)과 Theodore Becker(테오도어 베커)가 이 물질이 아세톤에 용해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가용성 형태의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가 개발됐다.

1년 후, Camille Dreyfus(까미유 드레퓌스)와 Henri Dreyfus(앙리 드레퓌스) 형제가 스위스 바젤의 한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의 관심은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로 향했고, 그들은 셀로판이 해내지 못했던 셀룰로이드 필름의 대체물이 될 수 있는 인화성이 적은 필름을 개발했다.

그들은 또한 당시 천과 나무로 이루어진 비행기의 외부 코팅용으로 사용된 도프(dope)로 래커를 만들었다. 이 래커도장은 비행기를 습기와 불의 영향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1913년, 셀로판을 만드는 공정이 완성되고 있을 무렵, Dreyfus 형제는 Cellonit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해 셀로오스 아세테이트 기반의 필름과 래커(스프레이 광택제) 제조에 나섰다.

오늘날까지도 투명 드라이버 손잡이 소재로 사용되는 CAB

 

아세테이트에서 섬유를 만드는 공정 개발을 막 시작할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들은 모든 노력을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래커 가공에 몰두해 영국 더비셔에 공장을 설립했다. 그리고 전쟁 중 Camille Dreyfus는 미국 정부 요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셀룰로오스 공장을 설립했다.

전쟁이 끝난 뒤 Dreyfus 형제는 아세테이트 섬유 개발을 재개해 이를 셀라니즈(Celanese)라 이름을 붙였고, 1923년에는 자신들의 영국 회사 이름을 British Celanese(브리티시 셀라니즈)로 바꾸었다. 1927년, Camille Dreyfus가 설립한 미국 회사 Amcelle은 뉴저지 뉴어크의 Celluloid Company(셀룰로이드 컴퍼니)를 인수했고, 회사는 Celanese Corporation of America(셀라니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로 이름을 바꿨다.

1931년 용융가공 가능한 버전의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를 Celanese가 개발했다. 이는Waldo Semon(왈도 세몬)이 PVC의 가공문제 해결을 위해 5년 전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물질을 가소화제로 사용하면서 이루어졌다.

같은 해, 아세트산 무수물(acetic anhydride)의 대부분을 프로피온산(propionic acid)으로 대체함으로써, 보다 충격 내성이 높고 용융가공을 위한 가소화제가 덜 필요한 화합물인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프로피오네이트(CAP)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38년에는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부티레이트(CAB)를 생산하기 위한 반응에서 부티르산(butyric acid)을 사용하면서 추가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이 물질은 향상된 인성을 보일 뿐만 아니라 CA와 CAP보다 내열성이 뛰어났다.

현재 ABS로 생산되는 레고(Lego) 블록도 처음에는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로 성형했다.

 

Celanese는 폴리머 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두어 종의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그레이드를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셀룰로오스 소재 분야에서 폭넓은 제품군을 유지하고 있는 또 다른 회사가 셀룰로오스의 초기 개발 시대의 또 다른 선구자 Eastman이다. 아마도 오늘날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가장 잘 알려진 애플리케이션은 투명 스크류드라이버 손잡이일 것이다.

그러나 셀룰로오스 소재는 코팅, 페인트, 래커 업계에 중요한 공헌자로 남아있다. 이 소재는 섬유 형태로 의복과 직물에 사용되며, 담배 필터에도 사용된다. 안경테는 여전히 셀룰로오스 소재로 만들어진다. 그리 높은 성능이 필요치 않은 쪽으로, 시상식이나 행사에서 가슴에 다는 리본은 거의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로만 만들어지며, 여전히 많은 놀이용 카드들이 이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ABS로 생산되고 있는 레고(Lego) 블록도 처음에는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로 성형했다. 또한 오버헤드 프로젝터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사용하는 슬라이드도 셀룰로오스 기반 소재로 만들어진다.

셀룰로오스 소재는 다른 소재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다. 셀로판은 1930년대 초 Dow Chemical(다우케미칼)에서 우연히 발견한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PVC, 폴리염화비닐리덴(PVDC)으로 대체됐다.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 섬유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로 대체됐다.

흥미롭게도, 플라스틱산업이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재, 셀룰로오스를 함유한 것이라면 무엇으로든 추출해낼 수 있는 폴리머가 새로운 차원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바이오라면 그 무엇이 됐든 폴리머를 만들어 내려고 연구자들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처음 시작했던 뿌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흥미롭다.

William Hale Charch가 셀로판의 수분 차단 성능 문제를 해결한 그 해에, DuPont은 또 다른 화학자를 고용해 기초소재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는 뒤에 최초의 엔지니어링 열가소성플라스틱으로 인정받게 되는 물질과 관련된 화학공정을 개발할 팀을 이끌게 된다. 이 부분은 다음 회 연재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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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10   폴리머 원료의 역사 ⑥ 플라스틱코리아